큐레이터의 단상

대중에게 어필할 기회가 없어 고민되는 미술 작가 지망생들에게

아르뜨 2014. 3. 5. 07:30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액티브한 삶과 직업을 꿈꾸는 20, 30대의 젊은 사람들(대학생, 기획자 등)이 그러한 삶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미술 작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말이죠.

   

큐레이팅, 전시기획, 문화예술 기획, 아트 마케팅 등의 타이틀 하나만 바라보고 미술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장에서 일하거나 공부해 봐야 느낄 수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한 고민 없이 조금 아는 광고, 마케팅 지식을 미술에 접목하면 좀 있어 보이지 않을까, 혹은 미술계가 시도하지 않고 있으니 사업 아이템으로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 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요즘 작가 지망생, 혹은 무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페이스북, 어플리케이션이 부쩍 많이 생긴 듯 합니다. 분명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두고 '미술'이라 할 수 있는지, 미술에는 더 높은 미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큐레이터는 이를 찾아 내거나 살려 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한 고민들을 해봤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전시 기획을 단순하게 공간을 빌려서 기획서 쓰고, 이벤트처럼 재밌게 홍보하고, 작품 설치하고, 전시장에서 고상하게 손님 맞이하면 되는 것으로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미술 전시에는 박물관(미술관) 전시, 갤러리 전시, 옥션 프리뷰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마다 성격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중요한 것은 전시를 통해 소개할 미술 작품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진 다음에 대중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설사 갤러리, 옥션에서 작품을 팔기 위해 전시를 할 때 조차도 이 작품이 왜 이 가격에 팔려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저런 아트 마케팅, 전시 기획이라는 타이틀을 앞 세운채, 조금 다른 분야의 사람만 끼어있으면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간편한 단어로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점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네요. 대중화되어 간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재밌고 좋은 현상이지만 미술은 대중성이 전부가 아니지요.

 

그리고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자리에 목 말라하는 아마추어 작가, 디자이너들을 도구화 한다는 점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미술계에 들어와 미적 기준 없이 아트 마케팅, 문화예술 마케팅, 아트 콜라보레이션 등의 알 수 없는 단어를 써가며 돈벌이로만 여기는 것 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가 듭니다.

   

저 역시 아마추어 작가들을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대중에게 소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단순히 작품들을 좌판대에 나열하는 식으로 선보이는 것은 지양할 생각입니다. 그런 방식은 원시 토속품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미술은 다양성과 층위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성, 즉 수평의 관계에서는 원시 토속품이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건 상관없이 모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미술이 성립되지 않지요. 그 이유는 다양성 뿐만 아니라 층위성이라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은연 중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층위성에 의한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작품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계속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저는 단순 나열식의 작품 소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 의뢰한 작품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의미 있는' 작품을 '큐레이팅'해서 적더라도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암튼 작가를 꿈꾸고 있지만, 대중에게 어필할 기회가 없다는 이유로 인해 기준 없이 좌판대 나열하듯이 작품들을 모아만 놓고 홍보하는 곳에 쉽사리 현혹되어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미술 역시 삶의 경험이 쌓이고, 삶에 대한 고민이 축적될 수록 좋은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미술사 속 작가들이 증명해준 것이지요.

   

조급한 마음에 작가로서의 기량이 무르익기도 전에 미리 대중에게 선보여서 날개가 꺾이는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차분하게 어차피 평생한다는 생각으로 작가로서의 기량, 제작 방향 등에 대해 더 고민하고, 이론도 공부하여 완숙한 기량을 바탕으로 고뇌가 깃든 작품을 만드는데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진행해 나가다 보면 분명 능력있는 큐레이터 눈에 들 것이고, 더 좋은 기회로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후에는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작품을 알릴 필요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일단은 지금 작가를 꿈꾸고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작품에만 몰입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