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

현대미술을 알기 위한 미술사 공부?

아르뜨 2012. 9. 7. 08:00

현대미술을 알기 위한 미술사 공부?

흔히 현재를 읽고, 미래를 내다 보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 말은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자주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맞는 말인건 알겠는데 왜 그래야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려운 그런 말인 듯 하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체험해본게 아니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존재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은 역사 공부의 원천이자 최종 목표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하는 학문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역사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해주는 학문이고, 현재 개인 혹은 국가의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는지를 꿰뚫어볼 수 있게 해주는 통찰력이 담겨 있는 학문이다.


나 역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러모로 학식도 얕고, 배운 것보다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이 남은 사람이기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의 나를 비추어 지금을 바라보면 예전보다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느낌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최소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의 이런 판단이 시간이 흐르면 잘못된 판단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연속성 혹은 사고의 유연성도 지니게 된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생활과 채움없이 소모하기만 하는 듯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내가 살아가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현명한 자세란 어느 분야이건 간에 시간은 흐르고 있고, 지금은 훗날 역사가 된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늘상 얘기하는 '깨어있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1. 현대미술은 도대체 어떤 미술인가?

그리고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현대미술' 역시 이러한 자세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영어로 'Contemporary Art' 즉 '동시대 미술'이다. 미술의 역사인 Art History와는 개념 자체가 다른 미술이다. 그래서인지 현대미술을 공부하거나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현대미술을 공부하는데 (케케묵은) 미술사까지 할 필요있나? 물론 알아두면 좋긴 하지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미술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사람으로서 자격상실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다. 물론 미술사에서 주로 공부하는 내용들과 현대미술에서 자주 나오는 담론은 외관상 닮은 것이 하나도 없긴 하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시간이 지나면 곧 미술사가 될 것이고, 현대미술 중에서 미술사적 가치에 부응하는 작가와 작품들만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한다면 미술사 공부의 가치는 절로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들은 19세기 서양미술이라고 하면 흔히 쿠르베, 마네, 모네 등을 기억하지만 그 시대에 이 작가들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듯이 말이다.

모네 등이 활동했을 당시에는 아카데미즘이라고 해서 신화, 성경, 영웅 등의 이야기를 소재로 그리스,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고전적인 양식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답습하던 화가들도 있었다. 왕실과 귀족들의 비호를 받으며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고, 당시 미술계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화가들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그 화가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당시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던 사실주의, 인상주의 화가들을 기억하고 있고, 미술사적 가치를 더 부여하고 있다. 즉 이것은 미술사에서 말하는 시대 사조와 연결된 것이고, 그 시대는 고전적인 양식의 답습이 아닌 인간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만을 기억할 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화가들은 이름도 남긴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사라질 것이고 현재 가치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소수의 화가들만이 훗날 기억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2. 미래의 미술사에 기록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고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종사하는 큐레이터들은 바로 이것을 동시대에 우선적으로 걸러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이러한 의식없이 전시회 수익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작가들을 섭외한다면 그러한 작가들과 함께 다음 세대의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가차없이 걸러지게 될 것이며, 큐레이터가 아닌 단순한 화상(畵商)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너무 가혹한 예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과거의 작가들과 소장가들을 이런 방식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예상은 미술의 진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미술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싶다면(작가이든, 큐레이터이든) 반드시 미술사를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이 현재 미술계의 흐름이 보일 것이고, 미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예측될 것이며 자신이 하는 큐레이팅이 진정한 의미의 큐레이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갤러리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단순히 실기만을 한 사람이 아니라 미술사 전공자들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미술 발전에 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기여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실제로 요즘 갤러리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미술사 전공자들이 점차 갤러리로도 진출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미술사 전공자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더 많은 진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 갤러리로도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외국의 갤러리나 옥션에서 이미 미술사 전공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역시 앞으로 그리 될 공산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미술사 전공자로서 현재의 우리나라 미술이 향후의 미술사에 많은 작가들이 포함될 만큼 발전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현대미술을 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이 꼭 미술사를 기반으로 현대미술을 다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미래의 미술사에 자신의 작품이 포함될 것인가, 누락될 것인가. 그리고 큐레이터라면 미래의 미술사에서 우수한 안목과 감식안의 큐레이터로 기록될 것인가, 단순한 화상(畵商)으로 치부될 것인가. 이를 염두에 둔다면 지금의 미술사 공부는 결코 등한시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