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하러 대학원까지 간다는 것은

아르뜨 2015. 7. 16. 16:32


어렵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닌 후 논문에 올인할 때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도서관에 박혀서 논문에 몰입했었죠. 학위 논문의 페이지수가 폰트 10.5에 양면 250페이지가 넘으니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어지간해서는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안생길 정도로 코스 워크의 달콤한 열매를 잘 먹고 있습니다(슬슬 내공의 한계를 느끼면서 역시 박사까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요).


그리고 논문을 쓰면서 중간중간에 자료가 필요하면 남들은 끽해야 지방에 자료를 찾으러 가는 반면 저는 일본을 자주 왕래해야 했습니다. 외국의 미술사를 전공하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말이죠. 사올 자료가 너무 많아서 차를 렌트해서 1,000km를 달리며 박물관, 도서관을 찾아다닌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제 논문의 주제였던 화가의 무덤을 찾아 한국에서도 안다니는 인적없는 산(영화 링에 나올법한 아주 높은 삼나무로 가득찬, 그래서 오후 3시인데도 어두컴컴한)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저 논문에 참고 도판으로 넣을 사진 한 장 찍기 위해서 말이죠.


게다가 책은 도판 이미지가 중요한 전공의 성격 때문에 툭하면 3만원이 넘기 일쑤였고, 복사와 제본비만 해도 상당한 지출을 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는 절판되서 살 수도 없는 무슨무슨 미술전집, 회화전집 등을 제본떠서 PDF로도 갖고 있고 복사본으로도 소장을 하려다보니 돈이 보통 많이 드는게 아니더군요. 제가 갖고 있는 수 많은 전시 도록 중에 가장 비싼건 한 권에 40만원인 경우도 있을 정도이니 말 다한거죠.

이 이야기는 결국 "나 공부하느라 힘들었다. 돈도 많이 들였다"로 귀결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스스로 이런 노력을 한 덕분에 학위까지 받았으니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도 합리적인 생각이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짝 틀어서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빈부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오늘, 내일만을 바라보며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어쩌면 이것도 굉장한 호사를 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꽤 힘들게 공부했지만 회사를 그만 둘 당시 어머니께서 "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안할테니 너가 하고 싶은 공부에 매진해라"라고 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복을 받은 셈이지요. 조금 과장하자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저는 사회 시스템의 수혜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이렇게 누려온 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줘야한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따로 강의도 하고는 있지만 그 못지 않은 기여가 필요한 때가 점차 다가온 듯합니다. 금전적인 기여도 의미가 있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 저만이 할 수 있는 것, 제가 공부해온 것을 가지고 이를 누리지 못하는 여건에 처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네요. 예를 들면 미술, 문화 향유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는 무료 강연 같은 것들을 말이죠.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거창하게 말고 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소하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꿈은 크면 클수록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시야를 넓혀주기만 하면 충분히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10대들과 문화 향유에서 멀어진채 가족들 뒷바라지에만 모든 시간을 쏟아오신 어머니 연배의 아주머니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습니다. 계획은 하면서 수정되어가고 다듬어지겠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혹시 추천해주실 아이디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