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

노블리안(2016년 9월호) 전시 소개글 기고

아르뜨 2016. 9. 8. 00:10





오랜만에 잡지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번 원고는 마침 제가 기획한 전시에 관한 것이어서 더 보람되고 좋더군요. 잡지 담당자가 지난 번보다 원고량을 늘려도 괜찮냐고 묻길래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작품들 모두 공부하고 관련 설명을 써놓다보니 새삼 아는만큼 글이 잘 나온다는 얘기에 공감을 하던 차였습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해서도 안되겠지만) 더 많은 공부를 하겠지만 1단계를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이 글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고, 또 전시보러 오시면 더욱 감사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으니 편하게 읽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인간은 현재에 비추어 흘러간 과거에 대해 미화하고,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좋기만 했던 과거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를 두고 객관성, 합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옛 일,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과거를 추억하거나,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하려는 노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일 수도 있다. 더 좋은 상태를 위해 과거를 조명하는 것,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복고(復古)’라고 부른다. 복고는 패션, 음악 등 문화의 많은 장르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복고라는 단어를 쉽게 접해왔고 덕분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복고는 단어 그대로 ‘옛 것으로 돌아간다’, ‘예전 상태를 회복한다’ 라는 의미이다. 미술에서도 복고 개념은 곧잘 사용되어왔다. 복고는 기본적으로 옛 것에 대한 추구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복고를 표방하는 모든 것들은 고전적이고, 클래식하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미술을 모범으로 삼았던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미술에 대해 설명할 때 고전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미술은 어떠했을까? 우선 복고를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듯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봐야한다. 따라서 동양이건, 서양이건 지역 구분없이 복고는 언제, 어디에서나 추구되어왔다.


복고는 동아시아 문예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중국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우선 중국회화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 동기창(1555-1636)은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라고 하며 회화 학습의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였다. 풀이하면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여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직역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문장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면 더 큰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책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깨우친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다. 이 점을 상기해보면 “만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즉 옛 사람들의 이론, 뜻을 기본으로 학습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만리의 길을 여행해야한다”는 것은 회화의 대상이 되는 자연을 직접 보고 경험해봐야된다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작품에 녹여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종합해보면 동기창의 “독만권서, 행만리로”는 옛 것을 추구하되 거기에 안주하면 그저 죽은 지식이 될테니 현실도 함께 반영해야 진정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복고’란 단순히 옛 것, 고전을 따라한다는 의미의 답습이 아니며, 이를 기반으로 하되 현실을 담아내어 자신만의 개성있는 변화를 시도해야 비로소 완전한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같은 이론은 ‘복고주의(復古主義)’, ‘의고주의(擬古主義)’로 불리며 명나라 이전부터 문인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추구되어왔다. 그리고 동기창의 회화 이론이 17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에 크게 영향을 끼치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가치가 되었다.


(중략)


원문 더 읽기(p. 48부터입니다)

https://issuu.com/noblian/docs/noblian_2016._09/1